대법원은 일관되게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도,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에는 보험에 의하여 담보된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피보험자가 이미 사망한 상황이므로, 피보험자가 정신질환으로 인해서 자살했는지 여부를 입증하거나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소송과정에서는 피보험자를 치료했던 주치의에게 사실조회를 하여 피보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그런데 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이 피보험자의 주변사람들의 진술 등을 근거로 주치의의 사실조회회신 과는 다른 판단을 한 사건이 있었고,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의학적, 전문적 자료에 의하지 않은 채, 주치의의 사실조회회신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시를 하면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
사실관계
원고의 딸인 망인(출생연도 생략)은 2004년경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는데, 2006. 10.경 학부모의 폭언 등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2008. 10.경 우울증 진단과 함께 약 2달간 치료를 받게 된 이후부터 매년 가을 무렵 우울증을 호소하여 이듬해 봄까지 월 1회 가량 그에 대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아왔다.
망인은 2011. 9. 말경부터 전신에 발병한 홍반성 구진 등의 피부병과 간 수치 악화 등으로 입원ㆍ통원 치료를 계속하다가, 2011. 10. 12. 퇴근 후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소송에 앞서 ‘망인이 공무상 질병인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하였다가 거부당하자 그 무렵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그 지급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소송과정에서 망인이 자살할 무렵 정신과 주치의를 몇 차례 찾아가, 학교 업무로 인해 제대로 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정을 밝히면서 ‘죽고 싶다.’거나 ‘간 수치나 피부병 등은 별로 관심이 없고 불안하고 힘든 것이 먼저다.’라는 취지의 상담을 하였던 사실이 밝혀졌다.
망인의 정신과 주치의는 위 소송에서 제1심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해 ‘망인은 2006년 사건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2개월 정도 힘들어했다고 하는데 그 기간이면 이를 첫 번째 우울증상으로 판단할 수 있고, 그 후 같은 계절이 되면 우울증상이 반복되어 계절성 양상의 재발성 주요 우울병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망인은 2011. 10. 4. 상담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하필 10월이어서 이전의 우울증상이 재발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심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이는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인 인지왜곡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자신이 2011. 10. 10. 망인에게 학교 제출용 소견서를 써주며 재입원을 강력히 권유한 이유 중 하나는 어떻게든 치료 유지가 될 수 있도록 시간적ㆍ환경적인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고, 절망적이고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지왜곡 증상에 맞서 망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치의가 최소한 한 명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 망인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라는 취지로 회신하였다.
이 사건의 항소심은, 사망 전날 피보험자가 정상적으로 출퇴근하였고, 사망 당일에도 특이한 행동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오후 늦게 거주지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는 사정만을 들어 ‘망인의 심리상태가 급격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거나 극도의 흥분상태나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자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약관상 보험자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판시사항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도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므로,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할 수 있다. 이때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이었는지 여부는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자살자의 신체적ㆍ정신적 심리상황, 그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그 진행경과와 정도 및 자살에 즈음한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태,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과 자살 무렵의 자살자의 행태,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 기타 자살의 동기, 그 경위와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주요우울장애와 자살의 관련성에 관한 의학적 판단 기준이 확립되어 있으므로, 을이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하였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되었다면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고, 만약 그러한 의학적 소견과 다르게 인과관계를 추단하려면 다른 의학적ㆍ전문적 자료에 기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하는데, 을을 치료하였던 정신과 전문의의 견해 및 그 바탕에 있는 의학적 판단 기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을이 자살할 무렵 주변 사람들에게 겉으로 보기에 이상한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거나 충동적이라고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자살하였다는 등의 사정만을 내세워 을이 우울증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원심판단에는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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